바칼로레아는 프랑스의 대학입시 방식으로 논술시험의 원조격이다. "욕망은 무한한 것인가?"와 같은 질문으로 철학적 사고력을 측정하는 시험으로 오랜 역사와 수준 높은 문제로 이름이 높다. 바칼로레아는 단순히 보면 어렵지만, 한 꺼풀 벗겨보면 현실에서 한번쯤은 생각해 볼 만한 문제를 제시한다. 우리 입시제도에 바칼로레아가 던지는 시사점은 없을까? 우리의 입시를 살펴보면 그 핵심은 뭐라 해도 자기주도학습과 수학능력 향상 그리고 사고력의 고양에 있다. 중학교, 고등학교에서 학생부가 강화되면서 세부특기사항과 창의체험활동, 그리고 각 과목별로 진행되는 수행평가 등이 중요해진 것이다. 'TODAY 바칼로레아' 는 프랑스 시민들이 사랑하는 철학적 사유를 지향하면서 동시에 입시를 앞둔 수험생에게도 힘이 될 수 있는 컨텐츠라 할 수 있다.

1965년 2월 20일 말콤 엑스 피격 사망

최고관리자 0 399 03.07 22:27

 

말콤엑스
본명 맬컴 리틀. 네브래스카주 오마하 출생. 블랙모슬렘의 지도자였으나, 이 파의 분리주의의 목표나 정치·시민 운동의 부정 등이 불만스러워, 1963년 이 파를 떠나 직접적 행동방식을 택하는 블랙내셔널리스트운동으로 나섰다. 종교와는 무관한 폭넓은 기반 위에서, 여러 공민권운동과도 일정한 관계를 갖는 아프리카계 미국흑인통일기구를 설립하였으나, 1965 2 21일 뉴욕에서 열린 인종차별 철폐를 주장하는 집회에서 연설 중 암살당하였다.

Topic

저항의 움직임은 어떻게 진행되어야 하는가?
인종주의에 저항한 미국의 두 거목은 바로 말콤엑스와 마틴루터킹이다. 마틴루터킹은 미국의 흑인 운동 지도자이자 목사이다. 보스턴 대학에서 신학 박사 학위를 받은 뒤 앨라배마 주의 몽고메리 교회에 부임하였다. 그곳에서 시영 버스의 차별적 좌석제에 대한 버스 보이콧 운동을 비폭력 전술로 이끌어 승리를 거두었고, 이를 계기로 하여 전국적인 지도자가 되었다. 그 뒤 1963년의 워싱턴 대행진을 비롯한 수많은 운동을 이끌어 공민권법 · 투표권법의 성립을 촉진시켰으나 1968년 멤피스에서 암살당하였다. 1964년에 노벨 평화상을 받았다. 과연 그들에게 있어 효과적인 전술은 무엇이었을까? 폭력적 저항의 말콤엑스인가? 비폭력적 저항의 마틴루터킹인가?

 

 

 

정치학자 에리카 체노베스와 마리아 스테판은 비폭력 시위를 연구했다. 그들은 1900년 이후의 모든 폭력 및 비폭력 혁명과 개혁의 사례를 데이터베이스화하고 통계적으로 분석했다. 그 결과 "1900년부터 2006년까지 세계적으로 비폭력 투쟁의 성공 가능성은 폭력적 투쟁의 두 배"인 것으로 나타났다. 50년 동안 시민 저항 운동은 그 효과도 강력해지고 빈도도 지속적으로 증가했던 반면에 폭력적 투쟁은 점차 횟수도 줄고 대부분 실패했다. 비폭력 저항이 실패할 것으로 여겨지는 극도로 억압적인 권위주의 독재 상황에서도 마찬가지다. 저항운동의 성공률은 집회 참가자 수, 인구대비 참가자 수에 달려있다. 일단 전 인구의 3.5%가 능동적이고 지속적으로 참여한 저항운동은 결코 실패하지 않았으며, 많은 경우 그보다 작은 참여율로도 성공했다." 또한 "실제로 3.5%의 문턱을 넘어선 모든 투쟁은 비폭력적인 것이었다. 비폭력 시위는 참여율을 높인다.

 

 

 

첫째, 시위 참여 장벽이 낮아진다. 시민 저항 운동은 다양한 신체적 능력을 가진 사람들의 참여가 허용된다. 여기에는 노인, 장애인, 여성, 아동 등 원하는 사람 모두가 포함된다." 낮은 장벽으로 더 많은 참여를 이끌어내는 것이 3.5%라는 매직 넘버를 넘는 지름길이다. 둘째, 시위 참여 비용이 낮아진다. 비폭력 투쟁에는 비싼 총이나 여타 무기도 필요하지 않다. 시민 불복종 운동은 흔히 파업, 불매 운동, 재가 시위, 냄비나 프라이팬을 두드려 소음을 내기, 그리고 1951년 영화 [지구 최후의 날]에서처럼 하루 중 정해진 시간에 전기를 끄는 것 같은 방식으로 진행된다. , 적은 비용으로 시위에 참여할 수 있다.

 

 

 

셋째, 경찰력 분산 효과가 있다. 비폭력적이면 진압이 더 쉽지 않나라고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다고 한다. 시위 참여가 쉬워진 만큼 곳곳에서 시위가 발생하게 된다. 경찰 병력은 한계가 있기 때문에 곳곳에 생긴 자생적 시위를 모두 관여할 수 없게 된다. 넷째, 경찰의 폭력진압 부담감이 생긴다. 시민 참여자가 다양해지면, 시위대에 노인, 어린이, 부녀자도 크게 늘어나게 된다. 진압 부대원의 친지나 가족이 포함될 가능성이 기하급수적으로 커진다. 세르비아의 독재자 슬로보단 밀로셰비치의 경우에 "밀로셰비치의 퇴진을 요구하기 위하여 베오그라드에 모인 세르비아 인이 수십만이 넘는 것으로 알려지자, 경찰은 시위대에 발포하라는 정부의 명령을 무시했다. 한 경찰관은 명령에 불복종한 이유가 시위대 중에 자신의 아이들도 있음을 알았기 때문이라고 했다."

 

 

마지막으로, 시위 성공 후 더 바람직한 결과를 가져온다. 비폭력 저항은 더 바람직한 결과를 가져온다. 비폭력 저항은 폭력적 투쟁에 비하여 민주주의 체제의 확립으로 귀결될 가능성이 훨씬 크다. 내전이 재발할 가능성은 15% 낮다. "데이터는 명백하다."라고 체노베스는 결론짓는다. "더 많은 사람이 시민 저항 운동에 의존할수록 운동의 규모는 점차 확대된다. 그리고 많은 수의 사람이 그들을 억압하던 체계를 버리기 시작하면 승산은 그들에게로 기운다." 이것이 평화로운 집회의 힘의 원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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