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칼로레아는 프랑스의 대학입시 방식으로 논술시험의 원조격이다. "욕망은 무한한 것인가?"와 같은 질문으로 철학적 사고력을 측정하는 시험으로 오랜 역사와 수준 높은 문제로 이름이 높다. 바칼로레아는 단순히 보면 어렵지만, 한 꺼풀 벗겨보면 현실에서 한번쯤은 생각해 볼 만한 문제를 제시한다. 우리 입시제도에 바칼로레아가 던지는 시사점은 없을까? 우리의 입시를 살펴보면 그 핵심은 뭐라 해도 자기주도학습과 수학능력 향상 그리고 사고력의 고양에 있다. 중학교, 고등학교에서 학생부가 강화되면서 세부특기사항과 창의체험활동, 그리고 각 과목별로 진행되는 수행평가 등이 중요해진 것이다. 'TODAY 바칼로레아' 는 프랑스 시민들이 사랑하는 철학적 사유를 지향하면서 동시에 입시를 앞둔 수험생에게도 힘이 될 수 있는 컨텐츠라 할 수 있다.

1894년 2월 22일 갑신정변 주역 김옥균, 중국 상해에서 암살

최고관리자 0 390 03.07 22:30

 

1884년 갑신정변으로 “3일천하를 장악했던 김옥균의 암살

 

갑신정변이 실패로 끝난 후 다수의 개화파와 그의 가족들이 붙잡혀 처형됐다. 간신히 일본으로 망명한 김옥균도 자신을 제거하려는 조선 자객들의 위협을 수차례 받아야 했다. 그리고 1894 2월 상해에서 자객 홍종우의 권총에 맞아 절명했다. 당시 나이 44세로 한창 때였다. 그는 살해된 다음해에 반역죄가 사면되었으나 1910년에 개화 부강시키려던 나라는 이미 일본의 수중에 들어가 있었다.

 

 

 

김옥균보다 더 비극적 최후를 마친 개화파가 김홍집과 어윤중이다. 1894년 일본군의 개입으로 갑오농민전쟁이 좌절된 후 성립된 내각의 총리대신을 지낸 김홍집은홍범 14를 발표해 새로운 국가체계를 세우고 갑오개혁을 단행했다. 그러나 다음해 을미의병이 일어나고 친러파가 집권하자 광화문 앞에서 군중들에게 살해되는 비운의 주인공이 됐다. 그는 개화냐 수구냐 하는 격동의 소용돌이 속에서 3차례김홍집 내각을 성립시켰으나, 외세의 도전을 자력으로 극복해야 한다는 주장을 실천하기도 전에 정국의 혼란으로 좌절했다. 개항 이후 한중 · 한미수호통상조약을 주도했던 어윤중도 아관파천 때 고향인 보은으로 피신하던 중 용인에서 살해됐다.

 

 

 

Topic

 

 

 

갑신정변, 민을 혁명의 주체로 호명해내지 못한 실패한 혁명인가? 그 의의를 어디서 찾을 수 있는가?

 

삼일천하로 끝난 갑신정변은 개화파가 위로부터 시도한 최초의 개혁운동이었다. 신정강에서 구체화된 개화파의 개혁 구상은 정치면에서 대외적으로 청나라와 종속관계를 청산하려 하였고 대내적으로 조선왕조의 전제주의 정치체제를 입헌군주제로 바꾸려 한 정치개혁이었다. 사회면에서도 문벌을 폐지하고 인민평등권을 제정하여 중세적 신분제를 청산하려 하였다. 경제면에서는 개화파들이 지주전호제를 유지하는 선에서 국가 재정를 강화하려고 지조법의 개혁만을 내세웠다. 상공업 면에서도 자본주의적 기업의 육성 문제나 자본주의 체제로의 전환 문제를 적극적으로 제시하지는 못하였다. 갑신정변이 실패한 직접적인 원인은 청군의 간섭 때문이었다. 그 밖에 정변 자체가 민중에 뿌리박지 못한 개화파의 위로부터의 개혁이었다는 점도 한 몫을 하였다.

 

 

한 예로 지조법 개혁방침은 종래의 지주제를 인정한 위에서 세제개혁의 차원에서만 토지문제를 제기함으로써 당시 반봉건 투쟁에 가장 철저한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는 민중을 고려하지 못하였고, 그 결과 정변 당시 민중의 지지를 받지 못하였다. 이는 급진개화파의 대다수가 봉건 대지주에 기반을 둔 계급적 한계에 기인한 것이었다. 나아가 개화파의 계급적 한계는 지주제 존속을 바탕으로 조선사회의 식민지화를 획책하던 구미열강과 투쟁할 내적 근거를 박약하게 하여 구미열강의 침략성에 철저하게 대응하지 못하였다. 그것은 곧 정권탈취와 개혁에 일본을 이용하려던 그들의 주관적 의도에도 불구하고 침략자를 원조자로 끌어들이게 되었고, 결국 일본의 배반으로 정변을 실패로 이끈 또 하나의 원인이 되었다. 그러나 갑신정변은 이러한 한계에도 불구하고 나라의 부국강병을 위한 근대적인 국가와 사회건설을 목표로 하는 것이었고, 단계적으로나마 국민주권주의를 지향한 최초의 정치개혁운동이었다는 데 그 의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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